
영화 <위플래쉬>는 오스카 수상 이후에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음악영화다. 이게 얼마나 레전드 영화냐면 개봉 10주년을 기념하여 3월 12일에 재개봉을 한다. 안 본 사람들 꼭 영화관으로 달려가서 보시길, 그리고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 폭력, 가스라이팅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마음 단단히 먹고 가시길 바란다.
<위플래쉬>는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닌, 극단적인 열정과 집착을 통해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되는 폭력의 경계를 날카롭게 묻는다. 이 글에서는 위플래쉬의 오스카 수상 이유, 드럼 연주가 실제인지, 그리고 영화가 던지는 열정을 향한 폭력의 의미를 깊이 있게 살펴본다.

<위플래쉬> 오스카 수상, 단순한 음악영화가 아니었던 이유
영화 <위플래쉬>는 2015년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음향상, 편집상 등 주요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흔히 음악영화가 감동과 낭만에 집중한다면, 위플래쉬는 불편할 정도로 날것의 감정을 전면에 내세운다. 오스카가 이 영화를 주목한 이유 역시 음악이라는 소재보다, 인간의 집착과 권력 구조, 그리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성을 정교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특히 J.K. 시몬스가 연기한 플레처 교수는 기존 영화 속 멘토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그는 학생을 격려하지 않고, 철저히 무너뜨린다. 하지만 그 방식이 단순한 악역이 아닌, 실제 예술계에 존재하는 극단적 스승의 모습을 닮아 있다는 점에서 관객은 쉽게 선악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 복합적인 감정 구조가 위플래쉬를 단순한 음악영화가 아닌, 인간 심리를 해부한 작품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편집과 음향의 완성도 역시 오스카 수상의 핵심 요소였다. 드럼 연주 장면에서의 리듬감 있는 컷 분할, 심장 박동처럼 몰아치는 음향 설계는 관객을 주인공의 압박감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는 기술적 완성도와 서사의 긴밀한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아카데미가 선호하는 영화적 성취를 정확히 충족시켰다.
주인공 드럼 연주는 실제인가
위플래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장면은 단연 주인공 앤드류의 드럼 연주다. 피가 튀고 손에 물집이 잡히는 장면은 연출을 넘어 실제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이다. 많은 관객이 궁금해하는 부분은 과연 이 연주가 실제인지, 아니면 대역이나 편집의 힘인지다.
결론부터 말하면, 배우 마일스 텔러는 실제로 드럼을 연주할 수 있는 배우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재즈 드럼을 배웠고, 영화 촬영 전에도 수개월간 강도 높은 연습을 추가로 진행했다. 물론 일부 고난도 장면에서는 전문 드러머의 대역과 편집 기술이 사용되었지만, 카메라 클로즈업 장면 상당수는 텔러의 실제 연주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영화의 열정이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배우의 실제 노력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한다. 위플래쉬의 드럼 장면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연주자의 호흡과 긴장, 미세한 박자 흔들림까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CG나 편집만으로는 구현하기 힘든 영역이다.
결국 위플래쉬는 영화 속 이야기와 현실의 제작 과정까지도 ‘집요한 반복과 연습’이라는 주제를 공유한다. 이 점이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플레처의 열정은 교육인가 폭력인가
위플래쉬가 지금까지도 논쟁적인 이유는 열정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다. 영화는 끝까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플레처의 방식은 분명 폭력적이며 비윤리적이지만, 그 결과로 앤드류는 한 단계 도약한다. 그렇다면 그 과정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나는 성장의 명목 하에 폭력이 정당화되지 않길 바란다. 폭력은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시키는 일과 다름없다. 폭력의 기억은 분명히 그 사람을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것이고, 괜찮다가도 어디선가 가끔 튀어나와 자아를 무너트릴 것이다. 또 어떤 경우의 수에서는 폭력이 대물림된다. "내가 이렇게 컸으니, 너도 이렇게 커야해" 처럼.
현대 교육과 조직 문화에서는 이미 플레처형 인물에 대한 비판이 지배적이다. 공포와 모욕을 통한 성과 창출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사람을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과 스포츠, 일부 전문 영역에서는 여전히 ‘한계를 넘기 위한 극단’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공존한다.
위플래쉬의 마지막 연주는 이 질문을 관객에게 되돌려준다. 승리인지, 파멸의 시작인지 모호한 엔딩은 열정의 양면성을 상징한다. 영화는 말한다. 위대한 성취 뒤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고. 그리고 그 대가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오롯이 개인의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위플래쉬는 단순히 음악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성공을 갈망하는 모든 현대인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디까지를 열정이라 부를 수 있는가?”